북아드리아해에 위치한 이스트리아 반도는 중부 유럽 국가에 가장 근접해 있는 지중해 관광지입니다. 이스트리아의 인구는 약 2십만명으로 행정 중심지는 파진(Pazin)이며 경제 중심지이자 가장 큰 도시는 풀라(Pula)입니다. 이스트리아 반도에는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으며 이는 유적으로 남아 있는 성곽 지역으로 알 수 있습니다. 그 중 하나인 몬코돈야(Monkodonja)는 로비니 근처에 있습니다. 그 오래 전에는 공룡이 이곳에 서식했으며 베일 지역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.
고대 로마인들이 첫 번째로 이곳에 큰 자취를 남겼으며 이 당시에 베스파시아누스 원형경기장(Amphitheater of Vespasian)과 풀라의 아우구스투스 사원(Temple of Augustus), 포레치(Poreč)의 사원들과 같은 가장 중요한 역사적 기념물이 세워졌습니다. 수많은 로마 양식의 집들을 반도 전역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특히 벨리 브리윤(Veli Brijun) 섬의 집들이 가장 특이합니다.
비잔틴 시대는 포레치 지역에 유프라시우스 바실리카(Euphrasius Basilica) 공회당을 남겼는데 이 공회당은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. 이스트리아는 슬라브, 로마 및 게르만 민족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는 도시와 촌, 현지 문화와 관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.
중세 때에는 이스트리아 전역의 도시들이 주변의 전략적인 지역을 다스리고 돌보곤 했지만 이제 이 중 일부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는가하면, 또 일부는 다시 부흥된 곳도 있고합니다. 예를 들어 그로즈냔(Grožnjan)은 국제적인 젊은 음악 중심지가 되었으나 세계에서 가장 작은 마을인 훔(Hum)은 여전히 봉건 시대의 관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. 풀라, 로비니 및 포레치와 같은 해안 마을에는 베네치아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시대의 자취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.
오스트리아-헝가리(Austro-Hungarian) 제국은 이스트리아에 강력한 경제 부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때 풀라는 제국의 주요 군항이 되었고 브리유니(Brijuni)는 유럽 상류층 사람들의 여름철 휴양지가 되었습니다.
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관광 개발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. 오늘날 이스트리아의 호텔, 아파트, 야영지 및 사설 숙박 시설은 하루 2십만명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.

이스트리아 관광청